2023년 윔블던 여자 단식 결승전. 마르케타 본드로우소바(Markéta Vondroušová)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세계 랭킹 40위권의 ‘비시드(unseeded)’ 선수로 대회에 출전한 그녀는 연승을 이어가며 결승에 진출했고, 최종적으로 튀니지의 스타 선수 온스 자베우르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윔블던 역사상 처음으로 비시드 선수가 여자 단식 챔피언이 된 순간이었다.
많은 팬과 전문가들이 놀란 이 결과 뒤에는, 단지 ‘이변’이 아닌 탄탄한 기본기와 고유의 전술적 강점이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본드로우소바의 플레이 스타일, 경기 전략, 멘탈, 신체 조건 등 다각도로 그녀의 강점을 분석하고, 그녀가 어떻게 정상에 설 수 있었는지 그 근본을 들여다본다.
1. 체코 스타일의 정수: 유연한 전술과 기술력
마르케타 본드로우소바는 1999년 체코에서 태어났다. 체코는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페트라 크비토바, 카롤리나 플리스코바 등 세계적인 여자 테니스 스타를 배출한 전통의 강호다. 본드로우소바 역시 이러한 환경 속에서 기술 중심의 테니스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녀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볼 컨트롤 능력이다. 파워보다는 볼을 얼마나 정밀하게 배치하고, 경기의 흐름을 자신 쪽으로 끌어올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둔다. 이는 최근 몇 년간 WTA 투어가 파워 중심으로 흘러가는 와중에도 본드로우소바가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2. 왼손잡이의 이점과 독특한 스핀
본드로우소바는 왼손잡이다. 테니스에서 왼손잡이 선수는 기본적으로 몇 가지 전술적 이점을 갖는다. 일반적인 오른손잡이 상대에게 백핸드를 공략할 수 있는 와이드 서브, 그리고 랠리에서 각도를 이용한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서브는 매우 빠르지는 않지만, 좌우 각도와 회전을 이용해 상대의 리듬을 흐트러뜨린다. 특히 상대 백핸드를 지속적으로 공략하며 실수를 유도하고, 오픈 코트를 만들어낸 뒤 공격으로 전환하는 패턴을 즐겨 사용한다.
또한 본드로우소바는 드롭샷 사용이 매우 능숙하다. 상대가 후방에서 수비하고 있을 때 과감하게 짧은 볼을 구사해 전위로 끌어내고, 이후 패싱샷이나 로브로 마무리하는 플레이는 그녀의 전매특허다. 이는 경기를 단조롭지 않게 만들며, 상대 입장에서 리듬을 잡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3. 수비력의 미학: 끈질긴 랠리와 위기 대응 능력
본드로우소바는 수비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로 알려져 있다. 강한 상대의 공격을 단순히 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비를 통해 역습의 기회를 만드는 스타일이다. 다리 움직임이 빠르고, 포지셔닝 감각이 탁월하기 때문에 코트 전반을 유기적으로 커버할 수 있다.
윔블던 2023에서도 그녀는 경기당 평균 실책 수가 매우 낮은 편이었고, 랠리 중 강한 공을 정확히 컨트롤하여 상대의 리듬을 깨뜨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특히 잔디 코트 특유의 빠른 전개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멘탈은 그녀의 수비력을 더욱 빛나게 했다.
4. 경기 운영의 전략성과 멘탈의 안정성
본드로우소바는 과감한 결정력보다 ‘판단력’이 뛰어난 선수다. 경기를 빠르게 전환하거나 느리게 끌고 가는 등, 경기 흐름을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상대의 심리 상태나 플레이 스타일을 빠르게 읽고, 여기에 맞춰 자신의 전략을 변형시킨다.
예를 들어 강한 서브와 포핸드 중심의 공격형 선수와 맞붙을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랠리를 길게 가져가며 상대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범실을 유도하는 전략을 쓴다. 반대로 수비적인 선수와의 경기에서는 짧은 볼과 드롭샷으로 전후 방향을 흔들며 직접 득점을 노린다.
이러한 전술적 다양성은 단순한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서 ‘게임 메이커’로서의 역량을 의미하며, 이는 윔블던이라는 최고 무대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5. 부상 이후 복귀 과정이 증명한 진짜 실력
본드로우소바는 2021년과 2022년에 손목 부상으로 인해 장기간 투어를 떠나야 했다. 손목 부상은 특히 테니스 선수에게 치명적인 악재로, 복귀 이후에도 전처럼 정교한 타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녀는 재활과 훈련을 성실히 이어갔고, 2023년 본격적으로 투어에 복귀한 뒤 곧바로 인상적인 성적을 쌓기 시작했다.
이는 그녀의 자기 관리 능력과 정신적 강인함, 그리고 전술적으로 손목에 부담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적응력까지 입증하는 사례다.
6. 본드로우소바의 플레이가 던지는 시사점
마르케타 본드로우소바의 성공은 현대 테니스에서 ‘파워’가 지배적인 트렌드일지라도, 다양한 전략과 기술이 여전히 유효하고, 오히려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줬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팬들과 주니어 선수들에게 전달한다:
- 빠르지 않아도, 정확하면 이긴다.
- 다이내믹하지 않아도, 안정적이면 경쟁력 있다.
- 기교와 유연성이 강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본드로우소바의 경기 스타일은 특히 동양권, 신체 조건이 다소 불리할 수 있는 선수들에게 더욱 참고할 만하다. 과감한 공격보다, 판단력과 전략 중심의 테니스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롤모델이라 할 수 있다.
7. 한국 테니스 팬들이 주목할 이유
한국 팬들에게 마르케타 본드로우소바는 ‘실전에서 살아남는 기술형 플레이어’의 전형으로 다가온다. 국내 테니스 팬과 선수들에게도 ‘무조건 세게 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특히 코트 전체를 사용하는 창의적 플레이와 멘탈 집중력, 그리고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은 많은 부분에서 학습 가치가 크다.
또한 그녀는 경기 후 인터뷰나 SNS에서도 차분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며, 스포츠인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단순한 경기력 외에도 팬층의 신뢰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결론: ‘조용한 챔피언’이 전하는 메시지
마르케타 본드로우소바는 소리 없이 강한 선수다. 그녀는 화려한 기술을 과시하거나, 경기장에서 과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정확함과 꾸준함, 그리고 영리함으로 코트를 지배한다. 이는 테니스라는 스포츠가 단순한 힘의 싸움이 아닌, 심리와 전략, 균형의 예술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앞으로의 투어에서도 본드로우소바는 조용히, 하지만 단단하게 세계 상위권을 지켜나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 테니스 팬들도 그녀의 행보를 지켜보며, ‘다르게 강한 선수’의 진면목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