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여자 테니스는 점점 더 단식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여전히 복식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은 전술적 완성도와 정교한 경기 운영 능력에서 단식 선수들과는 또 다른 깊이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바르보라 크레이치코바(Barbora Krejčíková)**는 복식 테니스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단식과 복식을 넘나들며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여러 차례 들어 올렸고, 특히 복식에서는 WTA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록 중 하나를 보유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이번 글에서는 크레이치코바의 복식 커리어를 중심으로, 그녀가 왜 ‘그랜드슬램 복식 여왕’이라 불리는지, 그리고 복식의 전술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지를 전문가적 시각에서 심층 분석한다.
1. 체코 테니스 전통을 잇는 복식 마스터
체코는 복식 강국이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헬레나 수코바, 야나 노보트나 등 수많은 레전드들이 복식 무대에서 세계를 제패했으며, 그 전통은 바르보라 크레이치코바를 통해 계승되고 있다.
크레이치코바는 1995년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다양한 운동 감각을 익혔고, 테니스에서는 전통적인 전위 플레이, 슬라이스, 앵글 샷, 로브 활용 등 복식에 특화된 기술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특히 그녀는 전설적인 체코 복식 선수 야나 노보트나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으며 복식 플레이의 정수를 체계적으로 배웠고, 이는 그녀의 커리어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2. 주요 복식 커리어 하이라이트
바르보라 크레이치코바는 현재까지 복식에서 다음과 같은 굵직한 성과를 거두었다.
- 그랜드슬램 복식 우승
- 프랑스 오픈: 2018, 2021
- 윔블던: 2022
- US 오픈: 2022
- 호주 오픈: 2022
→ 복식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4대 메이저 복식 타이틀 모두 석권)
- 복식 세계 랭킹 1위 등극
- 파트너 카테리나 시니아코바(Katerina Siniaková)와 함께 2022년 복식 랭킹 1위 차지
- 올림픽 금메달
- 2021년 도쿄 올림픽 여자 복식 금메달 (시니아코바와 함께)
- WTA 파이널 우승
- 2021, 2023년 복식 부문 우승
이러한 기록은 단순한 ‘좋은 선수’의 차원을 넘어, 복식 역사상 가장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파트너십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크레이치코바-시니아코바 조의 위상을 반영한다.
3. 크레이치코바의 복식 플레이 스타일 분석
크레이치코바의 복식 플레이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정확성, 창의성, 그리고 연결성.
- 정확한 포지셔닝과 반응 속도
크레이치코바는 전위 플레이에서 빠르고 안정적인 리플렉스(반사신경)를 보이며, 네트 앞에서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방향을 읽어낸다. 복식에서는 전위의 순간 판단이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는 그 영역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행력을 보여준다. - 창의적 패턴 구성
크레이치코바는 리턴 이후 전진 패턴, 서브 앤드 발리, 포칭(전위 선수가 크로스로 움직여 상대 리턴을 가로채는 전술) 등 다양한 복식 전술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특히 상대의 리듬을 끊는 로브나 슬라이스 드롭샷 등은 단식에서도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 파트너와의 연결
복식은 커뮤니케이션과 연계가 핵심인데, 크레이치코바는 시니아코바와의 호흡을 통해 완벽한 분업과 상호 보완적 포지셔닝을 이룬다. 두 선수는 사전 작전 설정과 즉석 대응 모두에서 매우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그 결과로 많은 중요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4. 단식 커리어와의 시너지
크레이치코바는 복식 전문 선수로 시작했지만, 점차 단식에서도 성장을 거듭하며 2021년 프랑스 오픈 단식 우승이라는 이례적인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는 복식 경험이 단식 경기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다.
- 전위 감각을 단식에 적용
그녀는 단식에서도 네트 플레이를 활용하는 비율이 높다. 이는 상대에게 다양한 압박을 가하며, 단조로운 베이스라인 전투에서 벗어나 경기 흐름을 주도하게 한다. - 공간 인식과 전술적 사고
복식을 통해 넓은 코트 공간 활용 능력을 기른 크레이치코바는 단식에서도 상대의 포지셔닝 약점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공격 계획을 수립하는 데 강점을 보인다. - 멘탈과 체력 운영 능력
복식 경기를 병행하는 선수들은 경기 당일 여러 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크레이치코바는 이를 통해 복합적인 피로 관리 능력과 멘탈 컨트롤을 배양했고, 이는 장시간 경기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5. 크레이치코바-시니아코바 조의 전략적 강점
이 둘의 호흡은 단순한 실력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준다. 두 선수는 기술적으로도 상호보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각자의 강점을 효과적으로 결합해 복식 최강 콤비로 자리잡았다.
- 크레이치코바: 안정된 백코트 플레이 + 정교한 전위 커버 + 전술 기획 능력
- 시니아코바: 폭발적인 포핸드 + 공격적인 전위 움직임 + 적극적인 네트 개입
이러한 조합은 전형적인 복식 강자들의 패턴인 “한 명은 볼 만들기, 다른 한 명은 마무리” 구도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WTA 복식 역사에서도 이 정도로 완성도 높은 팀은 흔치 않다.
6. 한국 팬들에게 주는 시사점
한국 테니스 팬들과 선수들에게 크레이치코바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 복식은 단지 보조 종목이 아니다. 전략, 팀워크, 그리고 전술적 사고의 총합이며, 단식에서도 응용 가능한 자원이 된다.
- 단식 성적이 전부는 아니다. 다양한 경기 경험이 오히려 선수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 복식의 가치는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을 가진 파트너와의 협력은 심리적 안정성과 경쟁력에 모두 기여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단식 위주의 육성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복식을 통해 전술과 전위 기술을 익히는 것이 국제무대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라는 점에서 크레이치코바의 사례는 큰 의미를 갖는다.
결론: 단식과 복식을 아우르는 테니스의 예술가
바르보라 크레이치코바는 단식과 복식을 모두 정복한 드문 복합형 테니스 선수다. 그녀는 복식에서 전술적 정교함과 파트너십의 미학을 보여주고, 단식에서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적이고 유연한 플레이를 선보인다.
그녀의 커리어는 단지 기록이 아닌, 현대 테니스가 추구해야 할 다양성과 유연성, 그리고 기술적 정교함의 모범이다. 앞으로도 그녀가 단식과 복식을 넘나들며 어떤 새로운 기록과 감동을 만들어낼지, 전 세계 테니스 팬들은 계속해서 주목할 수밖에 없다.